강화도
선사시대와 고대
- 구석기 유물인 쌍날찍개 및 신석기시대 토기가 발견 보고된 바 있으며,
청동기시대 대표적 유물인 고인돌 150여기 중 70여점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음 - 또한 삼국시대에는 혈구군을 설치했고, 불교의 유입으로 전등사를 비롯한
전통사찰이 창건되기 시작함
고려시대
- 몽골의 침입에 항쟁하고자 강화로 천도함에 따라 강도(江都)로서의 면모를 강화 고려궁지를 갖추었으며, 국난을 극복하자고 강화 선원사지에서 고려대장경이 제작하였음
- 고려시대 임시 수도로서 고려 왕릉(홍릉, 석릉, 곤릉, 가릉, 능내리석실분)이 축조되었으며, 충렬왕 12년(1286년) 문성공 안유가 공자상 봉안한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교동향교)가 있음
조선시대
- 국방상 방어기지로서 성·진·보·돈대·포대 등 국방유적이 설치 되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왕실의 피난지로의 역할을 수행하며, 왕실족보 보관을 위한 선원보각과 실록보관을 위한 장사각으로 구성된 정족산 사고(史庫) 및 외규장각, 행궁이 설치됨
- 숙종 때에는 12개의 진보와 53개의 돈대가 설치되었고, 강화산성과 강화외성이 개축되었으며, 강화를 중심으로 하곡 정제두 선생의 강화 양명학파의 학풍을 이루게 되고 대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춤
개항전후의 강화
- 수도의 관문에 위치하여 서구의 침략세력이 충돌하는 전장으로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을 거치면서 항쟁과 개항의 중심에 있었으며
- 병인양요로 프랑스군에 의해 왕실의 의궤를 보관하던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었고 개항 이후 서양종교의 수용과 함께 근대식 학교의 도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이 설립되었음
강화읍은 고려전기에 강화현에 속하였고 고려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천도 한후 강도의 소재지였으며 1377년(우왕 3) 강화현이 강화부로 승격된 이후 부치(府治)가 자리하고 있어 조선시대이래 부내면(府內面)이라 칭하다가 1938년 강화군의 이름을 따라 강화면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 7월 1일 강화읍으로 승격되었다.
강화는 강과 연관된 지명으로 강(한강, 임진, 예성)을 끼고 있는 아랫고을이라 강하(江下)라 부르다가 강아래 아름다운 고을이란 뜻으로 강화(江華)로 개명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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