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사무소 앞쪽 화단에는 묘비가 서 있다. 묘비의 위쪽은 깨어져 없어졌고, 남은 묘비마저도 마모되어서 확실한 형체를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묘비명에는 서흔남(徐欣男)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이 묘비는 동문 밖 검복리 병풍산 묘소에 있었는데, 그 후손이 화장을 하면서 묘역이 없어짐에 따라, 이쪽으로 옮겨온 것이라 한다. 서흔남의 묘비를 이쪽으로 옮긴 까닭은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을 구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쳐, 임금의 곤룡포를 하사 받기까지 한 그를 지속적으로 가리고자 함이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황급히 피난을 왔다. 사태가 다급해지자 인조를 모시던 신하들은 하나 둘 흩어져, 인조는 얼마 남지 않은 신하들과 함께 송파강을 겨우 건널 수 있었다. 강은 건넜으나 날은 어두..